C그룹회장의 캘리스케치
문패로 단 웃음 / 정유화
CgroupBoss
2024. 11. 21. 12:18
잠시 나를 바라보던 한 처녀가
눈웃음 하나를 놓고
봄이 오는 길모퉁이로 사라졌는데
그 눈웃음은 사라지지 않고
내게로 와서 복사꽃 피듯 피어나는데
이를 어찌해야 하나
가슴에 받아든 이 눈웃음에서
풋풋한 살냄새도 나고 보리냄새도 나고
아카시아 꽃향기도 나곤해서
이토록 오래도록 몸속에 지니고 싶은데
이를 어디다가 숨겨놓고 볼 수는 없을까
하여, 나는 나의 눈웃음까지 섞어
절벽에서 필 철쭉나무에게도 주고
턱을 괴고 듣기만 하는 바위에게도 나누어 주고
봄바람 쐬러 나오는 별의 처마에게도 나누어 주고
강물속의 물고기에게도 나누어 주고
그래도 남는 눈웃음이 있으면
우리집 문패로 걸어 놓으리
꽃피고 지는 계절 없이 늘
아껴서 볼 눈웃음
많은 피를 돌게 하는 눈웃음
문패로 단 웃음 / 정유화